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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보다 무서웠던 잔열과 기름, 그리고 보관의 착각
누가 살림이 쉽다고 했을까. 나는 매일 생활하는 공간을 관리하는 일이니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정리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매일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치워도 치운 티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생활은 매일 반복되고, 그 흔적 역시 매일 다시 쌓인다. 특히 주방은 욕실보다 안전한 공간일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욕실은 물을 많이 쓰는 공간이지만, 주방은 물을 사용해도 곧바로 닦아내고 정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일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이라 스스로 더 신경 쓰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살림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면서, 나는 주방에서도 곰팡이를 마주하게 됐다. 싱크대 하부장 안쪽, 배관 주변, 고무 패킹 틈, 심지어 도마를 세워둔 자리 뒤편까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곰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주방은 깨끗해 보이는 공간일 뿐, 곰팡이로부터 안전한 공간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그동안 눈에 보이는 물기만 관리하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잔열과 수증기, 조리 과정에서 퍼지는 기름, 그리고 보관 방식의 작은 습관들이 겹쳐 주방 안에 또 다른 조건을 만들고 있었다. 그 조건이 쌓이면서 결국 곰팡이라는 결과로 드러났던 것이다.
수많은 집기류를 버려보기도 했고, 강력한 세제를 사용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결과를 지우는 데만 집중했을 뿐, 원인이 되는 흐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 기록은 살림초보였던 내가 주방에서 곰팡이를 마주하며 깨달은 오해와 조건, 그리고 관리의 기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물보다 오래 남는 잔열의 문제
나는 오랫동안 곰팡이의 기본 조건은 눈에 보이는 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설거지를 마친 뒤 싱크대 상판을 닦고, 물이 튄 자리를 정리하면 관리가 끝났다고 믿었다. 하지만 주방에는 물기보다 더 오래 머무는 요소가 있었다. 바로 잔열과 수증기였다.
요리를 하면 냄비에서 올라온 수증기가 천장과 벽으로 퍼진다. 뜨거운 국을 끓이고, 물을 데우고, 찜 요리를 하는 동안 공기 중 습도는 빠르게 올라간다. 나는 후드를 켜두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드는 연기와 냄새를 배출하는 기능에 더 가깝지, 실내 습도를 완전히 낮추는 장치는 아니었다. 특히 겨울철에는 따뜻한 수증기가 차가운 벽을 만나 결로를 만들었고, 그 물방울은 상부장 위나 벽지 모서리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주방 후드와 욕실 환풍기는 공기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할 뿐, 표면에 남은 수분까지 직접 제거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있었다. 요즘 집안의 필수 가전이 된 식기세척기였다. 나는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면서 생활이 훨씬 편리해졌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편리함 뒤에 또 다른 환경 변화가 있었다. 식기세척기는 고온 스팀으로 세척과 건조를 진행하고, 완료 후에는 자동으로 문을 열어 내부 습기를 배출한다. 이때 발생하는 뜨거운 열기와 수증기는 생각보다 강했다.
우리 집 구조에서는 식기세척기가 싱크대 끝쪽, 베란다와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세척이 끝난 뒤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습기가 차가운 외부 공기와 만나면서 온도 차가 발생했고, 그 영향이 싱크대 상판과 주변 벽면에 그대로 전달됐다. 실제로 상판이 미세하게 휘어지는 현상을 겪으면서 나는 이 잔열을 더 이상 가볍게 볼 수 없게 됐다. 따뜻한 습기와 차가운 공기의 반복은 결로를 만들기 좋은 조건이었고, 이는 곰팡이가 자라기 적합한 환경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물을 닦는 데만 집중했지, 열과 공기의 흐름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반복했던 잔열과 습기의 순환이 주방 벽면과 수납장 안쪽의 환경을 서서히 바꾸고 있었다. 곰팡이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히 쌓인 조건 위에서 자라고 있었다.
기름은 곰팡이의 발판이 된다
주방 곰팡이를 관찰하면서 내가 새롭게 인식한 것은 기름의 역할이었다. 욕실에서는 물때막이 곰팡이의 발판이 되었다면, 주방에서는 기름막이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곰팡이는 물기만 있으면 생긴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물기 위에 무엇이 함께 남아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요리를 하면서 공기 중으로 퍼진 미세한 기름 입자들은 벽과 상부장 표면, 냉장고 옆면에 아주 얇게 달라붙는다. 이 기름막은 눈에 거의 보이지 않지만 표면을 미세하게 끈적하게 만든다. 그 위에 수증기와 먼지가 더해지면 작은 유기물 층이 형성된다. 곰팡이는 단순히 물만으로 자라는 존재가 아니다. 유기물과 수분이 함께 존재할 때 더 빠르게 번식한다. 결국 기름은 단순한 오염이 아니라, 곰팡이가 자리 잡기 좋은 토대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싱크대 상판은 자주 닦았지만, 상부장 위나 벽 모서리, 냉장고 측면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은 거의 관리하지 않았다. 겉으로 깨끗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부분은 손을 대기 싫을 만큼 끈적한 흔적으로 변해 있었다. 강한 세제를 사용해도 쉽게 닦이지 않았고, 결국 강력 스팀 청소기를 사용해야 기름막이 조금씩 벗겨졌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살림은 눈에 보이는 부분만 관리해서는 유지되지 않는다. 특히 주방은 기름과 수증기가 함께 순환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까지 습관처럼 관리해주어야 한다. 살림초보였던 나는 이런 사실을 이론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야 배웠다. 곰팡이는 그렇게, 내가 놓치고 있던 관리의 빈틈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싱크대 하부장의 조용한 변화
살림초보였던 시절, 나는 싱크대 하부장을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식기도 많지 않았고, 자주 사용하는 물건은 대부분 위쪽에 두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손이 덜 가는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어느 날 문을 열었을 때 눅눅한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 배관 주변에는 미세한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바닥 한쪽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살짝 변색되어 있었다.
설거지를 할 때마다 배관 내부에는 온도 차가 생긴다. 따뜻한 물이 흐른 뒤 배관이 식으면서 표면에 결로가 맺힌다. 그 작은 물방울들은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공기 중에 머물며 하부장 안쪽의 습도를 서서히 높인다. 나는 물이 새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팡이는 눈에 띄는 누수보다, 이렇게 반복되는 지속적인 미세 습기를 더 좋아하고 있었다.
하부장은 구조적으로도 곰팡이에 유리한 공간이었다. 평소에 거의 열어두지 않기 때문에 공기 순환이 부족했고, 어둡고 밀폐된 상태가 유지됐다. 여기에 세제 통이나 청소 도구에서 떨어진 잔여물, 미세한 먼지까지 더해지면서 곰팡이가 자라기 좋은 조건이 자연스럽게 완성되고 있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본가에서 부모님이 외출할 때마다 싱크대 문을 열어두셨던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그 행동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공기를 순환시키고 습기를 머물지 않게 하려는 관리의 방식이었다. 나는 직접 겪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싱크대 하부장은 그렇게, 내가 가장 방심했던 공간에서 조용히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보관의 착각
주방에서는 정리했다는 느낌이 곧 관리의 기준이 되기 쉽다. 나 역시 그랬다. 식재료를 용기에 옮겨 담고, 뚜껑을 단단히 닫아 정돈된 모습으로 정리해두면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안심했다. 냉장고 안이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으면 스스로에게 합격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깨달았다. 정리된 모습과 안전한 상태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완전히 식지 않은 음식을 바로 밀폐 용기에 넣는 습관, 물기가 남은 채로 보관한 채소, 씻은 뒤 충분히 말리지 않은 수세미를 싱크대 안쪽에 넣어두는 행동들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나는 외부 오염만 막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용기 안에 남은 미세한 수증기와 온기가 빠져나가지 못한 채 내부에 머물고 있었다.
밀폐는 외부 공기를 차단해주지만, 동시에 내부 습기를 가두는 역할도 한다. 따뜻한 음식에서 올라온 수증기가 뚜껑 안쪽에 맺히고, 그 물방울이 다시 떨어지면서 작은 결로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용기 내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습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특히 고무 패킹이나 실리콘 틈은 수분이 오래 머무르기 쉬운 구조다. 나는 설거지를 할 때마다 고무 패킹 사이에 남은 흔적을 닦아내느라 애를 먹었다. 겉은 깨끗해 보여도, 틈 사이에는 이미 곰팡이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경우도 있었다.
냉장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냉장 보관이면 안전하다고 믿었지만, 냉장고 안에서도 수분은 이동하고 응축된다. 물기가 덜 마른 채소는 보관 중에 내부 습도를 높였고, 한 번 사용하고 다시 닫아둔 소스 병의 입구에는 점점 어두운 흔적이 생겼다. 나는 그동안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안심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보관을 단순히 정리의 끝이 아니라 관리의 시작으로 보게 되었다. 어떤 상태로 넣는지, 충분히 식었는지, 물기는 제거됐는지, 공기가 순환될 여지는 있는지까지 고려해야 했다. 이제 나는 용기를 닫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한다. 이 안에 습기가 남아 있지는 않은지, 오늘의 편리함이 며칠 뒤의 곰팡이로 돌아오지는 않을지.
보관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조건을 만드는 시작이었다. 살림초보였던 나는 그 사실을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해서야 배우게 됐다. 곰팡이는 그렇게, 내가 정리했다고 믿었던 순간의 빈틈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주방 곰팡이를 통해 바뀐 기준
주방 곰팡이를 겪으면서 나는 관리의 기준을 근본부터 다시 세우게 됐다. 예전의 나는 눈에 보이는 물기를 닦아내는 것으로 관리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상판이 반짝이면 안심했고, 설거지가 끝나면 하루의 주방 관리도 마무리됐다고 여겼다. 하지만 곰팡이는 내가 보지 못한 시간과 조건 위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물기를 닦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잔열이 완전히 식는 시간까지 함께 고려한다.
나는 음식을 충분히 식힌 뒤에 보관하고, 식기세척기가 작동한 뒤에는 주변 공기의 흐름을 한 번 더 확인한다. 나는 싱크대 하부장을 주기적으로 열어 내부 공기를 순환시키고, 배관 주변에 결로가 생기지 않았는지 점검한다. 나는 상부장 위와 벽면처럼 평소 손이 잘 닿지 않던 공간도 정기적으로 닦는다. 이런 행동들은 거창하지 않지만, 조건을 바꾸는 작은 선택들이다.
이제 나는 주방이 깨끗해 보인다고 해서 쉽게 안심하지 않는다. 나는 기름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고, 수증기가 어디에 머물렀을지 상상한다. 나는 결로가 생길 수 있는 온도 차를 떠올리고, 보관 과정에서 습기가 갇히지 않았는지를 확인한다. 곰팡이는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조건이 조용히 겹쳐지고, 시간이 누적된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나는 결과를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 조건을 줄이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욕실에서는 물때막을 통해 겹겹이 쌓이는 조건을 배웠고, 벽지에서는 보이지 않는 습기의 시간을 배웠다. 그리고 주방에서는 잔열과 기름의 흐름이 어떻게 환경을 바꾸는지 알게 됐다. 같은 곰팡이지만, 공간마다 원인이 다르고, 관리의 방식도 달라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이해하게 됐다.
살림초보의 기록은 완벽한 해결법을 제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신 내가 어디에서 방심했고, 어떤 기준이 부족했는지를 돌아보는 과정에 가깝다. 나는 실패를 통해 관리의 기준을 다시 세웠고, 그 기준은 이제 주방을 넘어 다른 공간까지 확장되고 있다.
다음 기록에서는 식자재와 보관 환경 속에서 반복되던 곰팡이 경험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주방보다 더 미세하고, 더 쉽게 놓칠 수 있는 흐름이 그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안전해 보이지만, 관리의 기준이 없으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공간. 살림초보의 기록은 그렇게 집 안을 따라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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