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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초보의 식자재 곰팡이 기록

📑 목차

    냉장고에 넣어두면 안전하다는 착각

    살림초보 시절,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영역은 식자재 관리였다. 독립 초반의 삶은 대개 혼자이거나 둘이 사는 구조이고, 나 역시 두 식구로 생활하고 있었다. 둘 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집에서 밥을 먹는 횟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냉장고는 늘 가득 차 있었다. 가족들이 보내준 반찬과 김치, 각종 식자재들이 넉넉하게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알기에 받을 때마다 감사했지만, 그만큼 책임도 함께 따라왔다.

     

    문제는 소비 속도였다. 독립하면 부모님의 잔소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해방감이 먼저였다. 집밥 대신 배달 음식을 시키고, 먹고 싶은 것만 골라 식사를 해결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냉장고 속 반찬들은 점점 뒤로 밀려났다. 나중에 먹어야지 하며 미뤄둔 음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가 변해갔고,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쉽게 마주하지 못했다. 상한 반찬을 치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냄새와 흔적, 그리고 괜히 밀어둔 시간에 대한 죄책감까지 함께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살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식자재 관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본가에서는 냉장고가 늘 정돈되어 있었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이미 정리된 상태만을 보아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냉장 보관 = 안전이라는 공식을 믿고 있었다. 냉장고에 넣어두기만 하면 일정 기간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고, 유통기한만 확인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직접 장을 보고, 보관하고, 소비를 관리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전혀 다른 현실이 보였다. 냉장고는 시간을 멈춰주는 공간이 아니었다. 단지 변화를 늦춰줄 뿐이었다. 어느 날 냉장고 속 채소에서 곰팡이를 발견했을 때, 나는 단순히 식재료가 상한 것이 아니라, 나의 관리 기준이 비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 순간부터 식자재 곰팡이는 운이 나빴던 일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온 생활 습관의 결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살림초보의 식자재 곰팡이 기록

     

     

    유통기한보다 중요한 보관 상태

    나는 오랫동안 유통기한이 남아 있으면 안전하다고 믿었다. 날짜가 지나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라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 기준 안에서는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림을 직접 하면서 알게 됐다. 곰팡이는 날짜보다 환경에 훨씬 더 민감하다는 사실을.

     

    물기가 남은 채소를 그대로 밀폐 용기에 넣거나, 씻은 뒤 충분히 건조하지 않은 상태로 냉장 보관하면 내부 습도가 빠르게 올라간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용기 안에서는 작은 물방울이 맺히고 사라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 작은 결로가 계속 쌓이면 곰팡이가 자라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진다. 냉장고는 차갑지만, 동시에 밀폐된 작은 습기 공간이 되기도 한다.

     

    특히 잎채소는 그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겉면은 멀쩡해 보여도 아래쪽부터 서서히 무르기 시작한다. 나는 늘 겉만 보고 안심했다. 하지만 속에서는 이미 변화가 진행 중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통기한이 아니라, 어떤 상태로 넣었는가였다. 씻은 뒤 충분히 말렸는지, 물기를 제거했는지, 통 안의 공기가 순환될 여지가 있는지 같은 기본 조건이 훨씬 중요했다.

     

    사실 나는 채소의 상태를 읽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늘 챙겨주셨고, 상한 것은 미리 정리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날짜에만 의존했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무조건 버렸고, 남아 있으면 괜찮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됐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다르고, 보관 상태에 따라 실제 섭취 가능 기간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관리가 잘된 식재료는 생각보다 오래 가고, 반대로 관리가 부족하면 날짜와 상관없이 빠르게 상한다.

     

    또 하나의 습관도 문제였다. 귀찮다는 이유로 채소를 대충 비닐팩이나 지퍼백에 넣어 냉장고 안으로 밀어 넣는 행동이었다. 밀폐가 곧 보관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 남은 수분은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비닐 안쪽에 맺힌 물방울은 변질을 가속했고, 결국 곰팡이의 출발점이 됐다.

    이 경험 이후로 나는 날짜보다 상태를 먼저 확인한다. 냉장고에 넣는 행위 자체가 관리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식자재 곰팡이는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보관 상태에서, 조용히 시간을 먹으며 자라난다.

     

    냉장고도 완벽한 공간은 아니다

    냉장고는 차갑지만, 결코 완전히 건조한 공간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차갑다 = 안전하다”라고 생각하지만, 곰팡이는 반드시 따뜻한 환경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성장 속도는 느려질 뿐, 수분과 영양분이 존재하면 저온에서도 충분히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다. 냉장고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외부의 따뜻한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고, 내부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면서 온도 차가 발생한다. 이때 생기는 미세한 결로는 냉장고 벽면이나 선반 아래, 고무 패킹 틈에 맺힌다.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반복될수록 수분은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여기에 음식에서 나온 수증기와 채소 자체가 내뿜는 수분(호흡 작용으로 배출되는 수분)이 더해지면, 냉장고 내부는 생각보다 습한 공간이 된다.

     

    나는 냉장고에 넣는 순간 관리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서도 공기 흐름이 존재했고, 수분은 계속 이동하고 있었다. 특히 밀폐 용기 안은 더 조심해야 했다. 완전히 식지 않은 음식을 바로 담으면 내부에서 따뜻한 수증기가 발생하고, 뚜껑 안쪽에 물방울이 맺힌다. 이 작은 물방울은 마르지 않은 채 반복적으로 응축되면서 곰팡이의 기반이 된다.

     

    고무 패킹과 실리콘 틈은 더욱 취약하다. 이 부분은 구조상 수분이 오래 머무르고, 닦기도 쉽지 않다. 소스 병 뚜껑 안쪽, 잼 병 나사선 부분, 간장통 입구처럼 내용물이 닿는 곳에는 당분과 단백질이 남아 있다. 곰팡이 입장에서는 수분과 영양분이 함께 있는 셈이다. 어느 날 소스 병 뚜껑 안쪽에서 발견한 작은 곰팡이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나는 단지 닫아두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간과했던 부분은 냉장고의 수납 구조였다. 빽빽하게 채워 넣으면 공기 순환이 원활하지 않다. 냉기가 고르게 돌지 못하면 특정 구역은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아지고, 수분이 오래 남는다. 특히 문 쪽 수납칸은 온도 변화가 잦아 미세한 결로가 더 자주 생긴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에 자주 사용하는 소스류를 몰아넣고 있었다.

     

    경험 이후 나는 냉장고를 보관함이 아니라 작은 생태계처럼 바라보게 됐다. 차가운 환경 안에서도 수분은 움직이고, 음식은 쉬고, 조건은 계속 변한다. 냉장고는 완벽한 안전지대가 아니다. 오히려 관리의 기준이 세밀해져야 하는 공간이다. 닫아두는 것이 끝이 아니라어떤 상태로 넣고, 어떻게 순환시키고, 얼마나 자주 점검하느냐가 진짜 관리라는 사실을 작은 곰팡이 하나가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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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동실에서도 생긴 변화

    더 놀라웠던 경험은 냉동 보관 식자재에서의 변화였다. 나는 냉동이면 완전히 안전하다고 믿었다. 영하의 온도에서는 세균도, 곰팡이도 모두 멈출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애매한 상태의 식재료도 “일단 얼려두자”는 선택을 자주 했다. 당장 먹지 못하니 보류해두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판단이 완벽한 해결이 아니라, 단지 문제를 잠시 멈춰두는 것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됐다.

     

    냉동은 미생물의 활동을 정지에 가깝게 늦출 뿐, 완전히 사멸시키지는 않는다. 특히 냉동 전에 이미 표면에 미생물이 존재하거나 수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식재료는, 얼어 있는 동안에는 조용히 멈춰 있다가 해동과 동시에 다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전환 구간이다.

    냉동 전 단계에서 충분히 물기를 제거하지 않은 채소나 고기, 국물류는 얼면서 내부 수분이 얼음 결정으로 변한다. 이 얼음 결정은 세포 조직을 파괴한다. 그래서 해동하면 조직이 무르고, 수분이 한꺼번에 빠져나온다. 그때 표면에 맺히는 물기가 바로 또 하나의 시작점이 된다. 이미 조직이 손상된 상태이기 때문에 미생물이 침투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부분은 냉동실도 완전히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미세한 온도 변화가 생기고, 특히 문 쪽 수납칸이나 앞쪽에 둔 식재료는 더 큰 변화를 겪는다. 이런 반복적인 온도 변동은 아주 얇은 해동과 재냉동 과정을 만들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대로 얼어 있지만, 표면에서는 미세한 수분 이동이 일어나고 있을 수 있다.

     

    나는 특히 소분하지 않고 큰 덩어리로 얼려둔 식재료에서 문제를 많이 겪었다. 한 번 꺼냈다가 “조금만 쓰고 다시 넣자”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부분 해동이 일어났다. 그 사이에서 생긴 수분은 다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했고, 결국 식감은 망가지고 표면 상태도 변했다. 어떤 채소는 해동 후 특유의 냄새가 났고, 어떤 재료는 얼어 있을 때는 멀쩡해 보였지만 녹이자마자 빠르게 상했다.

     

    곰팡이는 냉동 상태에서 활발히 자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냉동 전과 해동 후의 관리가 허술하면, 그 사이에서 조건이 만들어진다. 특히 해동을 상온에서 오래 두는 경우, 표면 온도는 빠르게 올라가지만 내부는 차가운 상태가 유지된다. 이 온도 차는 표면에 결로를 만들고, 수분이 집중된다. 이미 약해진 조직과 수분이 결합하면 미생물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얼려두면 된다는 생각은 관리의 끝이 아니라, 관리의 연장선이었다는 것을.

     

    이후로 나는 냉동 전 단계에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 물기를 충분히 제거하고, 완전히 식힌 뒤 소분해 밀봉하고, 재냉동을 피하기 위해 1회 사용량 기준으로 나눴다. 해동은 가능한 한 냉장 해동으로 천천히 진행해 표면 결로를 줄이려고 했다.

     

    냉동은 시간을 멈추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을 늦추는 방법일 뿐이다.
    조건을 그대로 얼려버리면, 문제도 함께 얼어 있다가 다시 녹을 뿐이라는 , 살림초보는 냉동실 앞에서야 비로소 배우게 됐다.

     

    소비량을 고려하지 않은 장보기

    식자재 곰팡이는 단순히 보관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비량을 고려하지 않은 장보기 습관도 원인이었다. 식구가 적은데도 대용량을 구매했고, 할인이라는 이유로 필요 이상을 담았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일이 반복됐다.

    나는 상한 식재료를 버릴 때마다 죄책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다. 본가에서는 쉬워 보였던 식자재 관리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기준의 부재였다. 나는 얼마나 먹을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얼마나 저렴한가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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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자재 곰팡이를 통해 바뀐 기준

    이 경험 이후 나는 식자재 관리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 나는 물기를 제거한 뒤 보관하고, 음식은 충분히 식힌 뒤 밀폐한다. 나는 냉장고 안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보이지 않는 틈까지 닦는다. 나는 장을 보기 전에 냉장고 속 재고를 먼저 확인하고, 소비 속도를 고려한다.

     

    나는 이제 겉으로 멀쩡해 보인다고 해서 안심하지 않는다. 곰팡이는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조건들이 겹쳐진 결과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식자재 곰팡이는 단순한 부패가 아니라, 관리 기준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욕실에서는 물때막을 통해 표면의 조건을 배웠고, 벽지에서는 습기의 시간을 배웠고, 주방에서는 잔열과 기름의 흐름을 배웠다. 그리고 식자재를 통해 나는 보관의 시작 조건을 배우게 됐다.

     

    살림초보의 기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는 완벽한 관리자가 아니지만, 적어도 조건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기록에서는 빨래와 세탁 환경 속에서 반복되던 다른 곰팡이 경험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습기의 흐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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