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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아두면 안전하다는 믿음이 만든 사각지대
살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옷장과 수납장에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문을 닫아두면 먼지도 막을 수 있고, 정리만 잘해두면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깨끗하게 세탁한 옷을 잘 말려 차곡차곡 넣어두는 것, 그것이 관리의 전부라고 여겼다.
하지만 살림초보로 직접 공간을 책임지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닫혀 있는 공간일수록 오히려 더 많은 조건이 겹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기가 잘 통하지 않고, 한 번 들어간 습기는 빠져나오기 어렵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온도 차와 습기의 이동은 내가 문을 닫아둔다고 해서 멈추지 않았다.
오랜만에 옷장 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던 묘한 냄새, 서랍 구석에서 발견한 작은 얼룩, 상자 바닥에 번져 있던 희미한 자국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 흔적들은 내가 확인하지 않았던 시간의 결과였다. 나는 겉으로 정리된 모습만 보고 안심했지만, 그 안에서는 공기와 습기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정성껏 접어 넣어두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정리된 옷들은 대부분 어둡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공간으로 들어간다. 몇 달이 지난 뒤 다시 열어보면 꿈꿈한 냄새가 먼저 올라왔고, 때로는 좀벌레의 흔적까지 발견했다. 겉보기에는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 안의 환경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그 경험 이후 나는 닫아두는 것이 곧 보호라는 생각을 내려놓게 됐다. 옷 관리란 단순히 접어 넣는 일이 아니라, 그 공간의 공기와 습기를 함께 관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 기록은 옷장과 수납 공간이라는 조용한 장소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방치하고 있었는지를 돌아본 이야기다.

닫힌 공간은 공기가 멈춘 공간이었다
나는 옷장을 닫아두는 것이 곧 정리라고 생각했다. 문을 닫으면 시야에서 사라지고, 외부 공기와 차단되니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 겉으로 보기엔 단정했고, 먼지도 덜 쌓일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닫힌 공간은 단지 깔끔해 보일 뿐 공기가 멈춰 있는 공간이었다.
옷장 안에는 계절 옷, 이불, 가방, 상자들이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좋은 살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공기가 흐를 틈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옷은 점점 늘어났고, 공간은 부족해졌다. 비움보다는 채움이 우선이었다. 결국 집이 아니라 옷에게 공간을 내어준 셈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과연 관리가 가능했을까. 돌이켜보면 그 시작은 이미 방치였다.
특히 외벽과 맞닿은 옷장은 더 취약했다. 겨울철이 되면 벽면은 차갑게 식었고, 실내의 따뜻한 공기와 만나면서 미세한 결로가 반복되었다. 나는 그 변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옷장 뒤편 벽지에서 발견한 작은 곰팡이 자국은, 그 안에서 시간이 꽤 흘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옷장은 조용했다. 물이 흐르지도 않았고, 냄새도 늦게 올라왔다. 그래서 더 오래 방심했다. 그러나 닫힌 공간 안에서는 공기가 멈춘 채로 습기가 천천히 쌓이고 있었다. 나는 문을 닫아두는 것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변화가 진행되는 시간을 외면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완전히 말랐다”는 착각
나는 세탁이 끝나고 옷을 널어 말린 뒤, 겉으로 만졌을 때 보송하면 충분히 마른 것이라 생각했다. 손끝에 느껴지는 촉감이 기준이었다. 하지만 두꺼운 니트, 청바지, 이불처럼 섬유가 겹겹이 쌓인 옷들은 표면과 내부의 건조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겉은 말라도 안쪽에는 미세한 수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표면만 확인한 채 그 옷들을 그대로 옷장 안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실내 건조나 건조기를 사용하는 일이 잦다. 건조기에 넣고 버튼만 누르면 끝이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하지만 건조기를 사용하더라도 한 번에 많은 양을 돌리면 부분적으로 덜 마르는 옷이 생긴다. 겉으로는 마른 것처럼 느껴지지만, 접히는 부분이나 두꺼운 봉제선 안쪽에는 수분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태로 옷장에 들어가면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옷장 안은 공기 흐름이 제한적인 공간이다. 옷이 서로 밀착되어 있으면 남아 있던 수분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 수분은 옷장 내부 공기와 만나 작은 습기 환경을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섬유 깊숙한 곳에 영향을 준다. 나는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코트를 꺼내다가 안쪽에 희미한 얼룩을 발견한 적이 있다. 겉에서는 보이지 않던 자국이었다. 그 순간, 나는 건조를 느낌으로 판단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그 이후로 나는 건조를 촉감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두꺼운 옷은 더 오래 말리고, 건조 후에도 잠시 펼쳐 두어 내부 열기와 수분이 빠져나가도록 시간을 둔다. 건조는 단순히 겉의 물기가 사라지는 과정이 아니었다. 섬유 깊숙이 남아 있는 수분까지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값비싼 옷이 상해버린 뒤에야 깨달았다. 아끼던 옷에 남은 얼룩과 변형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충분히 말랐다는 나의 안일한 판단이 만든 결과였다. 그 경험 이후로 나는 건조를 서두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상태가 아니라, 옷이 놓인 환경과 시간까지 함께 확인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더불어 빨래와 관련된 이전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수납 상자와 이불장의 사각지대
옷장뿐 아니라 수납 상자와 이불장도 비슷했다. 나는 계절이 지난 옷과 이불을 정리해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아두면 관리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 안에 남아 있던 미세한 습기는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특히 장마철을 지나고 나면 상자 안쪽 공기는 눅눅해져 있었고, 열어보는 순간 특유의 묵은 냄새가 올라왔다.
한 번은 겨울 이불을 꺼냈다가 접힌 안쪽에서 작은 점을 발견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내부는 완전히 건조되지 않은 채 접혀 있었던 것이다. 이불은 두껍고 부피가 커서 표면이 마른 듯 보여도 안쪽 섬유는 더 오래 수분을 머금고 있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 이후로 보관의 기준을 바꿨다.
이불과 두꺼운 옷은 하루 이상 추가 건조 후에 접고, 가능한 한 완전히 식은 상태에서 정리한다. 장마철에는 바로 밀폐하지 않고 하루 정도 통풍이 되는 상태로 두었다가 보관한다. 수납 상자는 벽에 바짝 붙이지 않고 약간의 공간을 두고 배치한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지 않더라도 중간 점검을 한 번씩 해본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알게 됐다.
보관은 정리의 끝이 아니라, 습기를 통제하는 또 하나의 관리 과정이라는 것을.



제습제에 대한 과신
나는 한동안 제습제를 해결책처럼 믿었다. 옷장 구석마다 제습제를 넣어두면 관리가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눈에 보이는 물이 차오르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제습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이미 습한 환경을 보여주는 신호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특히 작은 옷장용 제습제는 며칠 만에 물이 가득 차버리기도 했다. 젤 타입 제품은 빠르게 변했고,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공간이 과하게 건조해지면서 옷감이 뻣뻣해지는 느낌도 받았다. 무엇보다 제습제의 변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자주 교체해야 했다. 번거로웠지만, 그 작은 제습제 하나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에 계속 갈아 넣었다. 그러나 빽빽하게 채워진 옷장 안에서 작은 제습제 하나가 공간 전체의 습기를 감당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때 나는 질문하게 됐다.
정말 제습제가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안심만 하고 있었던 걸까.
이후 나는 제습제에 의존하기보다 공간 자체를 먼저 바꾸기 시작했다. 옷과 벽 사이에 약간의 간격을 두고, 외벽과 맞닿은 옷장은 물건을 덜 채웠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한 번 비워 환기를 시켰고, 평소에도 가끔 문을 열어 공기가 머물지 않도록 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옷장 안 공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눅눅한 냄새가 줄었고, 이전처럼 불안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알게 됐다.
제습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환경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곰팡이를 막는 일은 무언가를 넣는 것보다, 습기가 머무는 구조를 바꾸는 일에 더 가까웠다.



옷장 곰팡이를 통해 바뀐 기준
옷장과 수납 공간에서 곰팡이를 겪으며 나는 또 하나의 관리 기준을 배우게 됐다. 이전의 나는 정리되어 보이는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문이 닫혀 있고, 겉으로 깔끔해 보이면 잘 관리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지금은 그 공간에 공기가 흐르고 있는지, 습기가 머물 구조는 아닌지를 먼저 떠올린다. 닫아두는 것이 보호라고 믿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적절히 열어두는 것 역시 관리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
살림을 하면서 점점 깨닫는다. 부모님이 아무렇지 않게 하던 사소한 행동들, 외출할 때 문을 살짝 열어두던 습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한 번씩 비우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말이다. 그때는 의미 없이 보였던 행동들이 사실은 습기를 흘려보내기 위한 작은 관리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다.
곰팡이는 늘 눈에 잘 띄지 않는 공간에서 먼저 자란다. 욕실에서는 물기 위에서, 주방에서는 기름과 잔열 사이에서, 빨래에서는 젖은 섬유 속에서 조건을 만들었다면, 옷장에서는 멈춰 있는 공기와 남은 미세한 수분 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공간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잠시 괜찮겠지라고 넘긴 시간들이 쌓였다는 것.
살림초보의 기록은 공간마다 다른 습기의 얼굴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나는 이제 옷을 넣기 전 한 번 더 건조 상태를 확인하고, 옷장 안 구조를 점검한다. 벽과의 간격, 수납 밀도, 공기의 흐름을 생각한다. 곰팡이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내가 닫아두었던 시간 속에서 천천히 자라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옷장 문을 열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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