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림초보의 에어컨 속 곰팡이 기록

📑 목차

    차가운 바람 뒤에 숨어 있던 조건

    욕실에서는 물기를, 벽지에서는 결로를, 주방에서는 잔열과 기름을 배웠다. 빨래와 옷장을 거치며 나는 습기가 머무는 시간이 곰팡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지나고도 나는 또 하나의 공간을 놓치고 있었다. 바로 에어컨이었다. 여름이면 하루 종일 돌아가고, 차갑고 상쾌한 바람을 내보내는 기계. 나는 그 바람이 시원한 만큼 내부도 깨끗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에어컨을 켜는 순간 퍼져 나오던 묘한 냄새는, 그 믿음이 틀렸다는 신호였다.

     

    에어컨은 공기를 시원하게 만들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결로를 만든다. 뜨거운 여름 공기가 차가운 냉각핀을 만나면 물방울이 맺힌다. 그 물은 배수관을 통해 빠져나가지만, 모든 수분이 완벽히 제거되지는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차갑게 식혀주니 오히려 건조할 거라고 막연히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어컨 내부는 사용 중에는 차갑고 습하며, 사용 후에는 따뜻하게 식어가는 구조를 반복한다. 그 과정이 곰팡이에게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살림초보의 에어컨 속 곰팡이 기록

    “꺼두면 끝”이라는 또 하나의 오해

    살림초보였던 나는 에어컨을 끄는 순간 관리도 끝났다고 믿었다. 필터 청소 알림이 뜨면 한 번 분리해 씻고 말리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문제는 늘 보이는 곳이 아니라 그 뒤에 있었다. 필터 너머의 냉각핀과 송풍팬, 내부 통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 안은 공기만 지나는 공간이 아니라, 물과 먼지, 공기 중 유기물이 함께 통과하는 구조였다. 나는 겉면이 깨끗하면 내부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결로와 미세한 먼지가 반복적으로 쌓이고 있었다.

     

    특히 여름철에는 에어컨을 장시간 가동한다. 하루 종일 틀어둔 뒤 전원을 끄면, 내부에는 여전히 수분이 남아 있다. 그 상태에서 그대로 멈춰버리면 내부는 어둡고 습한 채로 유지된다. 나는 욕실에서 환풍기만 켜두는 것은 관리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이미 배웠다. 물기를 직접 정리하지 않으면 조건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다. 그런데 에어컨에서는 그 교훈을 적용하지 못했다. 송풍 기능으로 내부를 충분히 말리지 않은 채 전원을 끄는 습관이, 곰팡이가 자라기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여름이 돌아오고, 사용 전 점검을 위해 필터를 분리했을 때 나는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했다. 필터 뒤쪽과 바람이 나오는 송출구 주변에 먼지와 함께 작은 검은 점들이 보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여러 공간의 경험이 연결됐다. 욕실의 물때막, 벽지 뒤의 결로, 옷장 속 멈춘 공기처럼, 이곳 역시 보이지 않는 습기의 시간이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차가운 바람이 나온다고 해서 내부까지 깨끗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그 차가움은 결로가 반복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었다. 에어컨은 공기를 식히는 기계이지만, 관리하지 않으면 습기를 머금은 공간이 된다. 꺼두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멈춘 뒤의 시간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배웠다.

     

    보이지 않는 내부, 멈춰 있는 공기

    에어컨은 공기를 강하게 순환시키는 기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부 구조는 멈춰 있는 공기를 만들어낸다. 가동 중에는 바람이 빠르게 흐르지만, 전원을 끄는 순간 내부는 밀폐된 공간이 된다. 나는 옷장을 통해 닫힌 공간이 얼마나 쉽게 습기를 가두는지 이미 경험했다. 에어컨 역시 다르지 않았다. 겉으로는 통풍의 상징 같지만, 멈춘 뒤에는 어둡고 습한 작은 방이 내부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생각보다 많은 미세 유기물이 떠다닌다. 먼지, 섬유 조각, 피부 각질, 요리 중 발생한 미세 기름 입자까지 에어컨을 통과한다. 필터가 1차로 걸러내지만, 모든 입자를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한다. 일부는 냉각핀과 송풍팬, 내부 통로에 남는다. 그 위에 냉방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생기는 결로수가 더해지면, 얇은 유기물 층이 형성된다. 욕실에서 물때막이 곰팡이의 발판이 되었듯, 에어컨 내부에서는 먼지와 수분이 또 다른 막을 만든다. 곰팡이는 단순히 물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수분과 먹이가 함께 있을 때 훨씬 빠르게 번식한다는 사실을 나는 여러 공간을 통해 배웠다.

     

    처음에는 에어컨에서 나는 미묘한 냄새를 외부 공기 탓으로 돌렸다. 장마철이라서 그렇겠지, 환기가 부족해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방향제를 두거나 필터만 세척하면 해결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방향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했다. 문제는 바깥 공기가 아니라, 내부 환경이었다.

     

    에어컨은 깨끗한 공기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기계가 아니었다. 관리가 동반되지 않으면, 내부에 쌓인 조건을 그대로 실내로 다시 순환시키는 구조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한 뒤에야, 가동 시간만큼이나 멈춘 뒤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에어컨도 결국 하나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 역시 내가 관리하지 않으면, 조용히 조건을 쌓아가는 또 다른 곰팡이의 자리였다. 살림초보는 업체를 불러 그 까만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그렇게 또 하나의 수업료를 내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살림초보의 에어컨 속 곰팡이 기록살림초보의 에어컨 속 곰팡이 기록살림초보의 에어컨 속 곰팡이 기록


    계절이 끝난 뒤의 방치

    또 하나의 문제는 계절성 사용이었다. 여름이 끝나면 에어컨은 몇 달간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전원을 끄고 커버를 씌워두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내부에 남아 있던 수분이 완전히 마르지 않은 상태라면, 그 몇 달은 곰팡이가 자라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욕실에서 물기가 마르는 시간을 배웠고, 벽지에서 습기가 쌓이는 시간을 배웠으며, 빨래에서 젖은 채 머무는 시간이 문제라는 걸 이해했는데도, 에어컨에서는 그 시간을 계산하지 않았다. 기계라는 이유로 예외를 두고 있었던 셈이다.

     

    이후 나는 사용 후 송풍 모드를 일정 시간 작동시켜 내부를 말리고, 시즌이 끝나기 전 내부 청소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분해 청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부가 젖은 채로 긴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기준을 세웠다. 작은 변화였지만 다음 해 첫 가동 시 느껴지는 공기 질은 확연히 달랐다.

     

    이때 의견이 두가지고 갈린다. 깨끗하게 분해청소를 해야지 잔여 물기나 곰팡이가 없어 몇달동안 방치해도 괜찮다는 의견과, 에어컨 가동전에 청소를 해도 된다는 의견이 있다. 내가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청소 시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젖은 채로 장기 방치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다. 시즌이 끝난 직후 최소한 내부를 충분히 말리고, 오염이 심하다면 그때 정리해두는 것이 안전하다. 그리고 다음 시즌 전에는 가볍게라도 상태를 점검한다.

     

    결국 핵심은 타이밍 논쟁이 아니라 조건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욕실에서 물때막을 관리하듯, 옷장에서 공기 흐름을 만들듯, 에어컨도 멈춘 시간까지 고려해야 했다. 살림초보였던 나는 그렇게 또 하나의 기준을 세웠다. 기계도 공간처럼 다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공간은 언제나 시간과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살림초보의 에어컨 속 곰팡이 기록살림초보의 에어컨 속 곰팡이 기록살림초보의 에어컨 속 곰팡이 기록

    분해청소 VS 셀프 관리 차이

    살림초보였던 나는 에어컨 관리를 두 가지 선택지로만 생각했다. 하나는 전문가를 불러 완전 분해청소를 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필터를 씻고 외부를 닦는 셀프 관리였다. 처음에는 둘 중 하나만 제대로 하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여러 번의 경험 끝에 나는 이 둘이 서로를 대체하는 방법이 아니라, 역할이 다른 관리 단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분해청소는 말 그대로 내부를 깊이 열어 냉각핀과 송풍팬, 배수 구조까지 세척하는 작업이다. 평소 손이 닿지 않는 부분에 쌓인 먼지와 유기물, 결로 흔적까지 한 번에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냄새가 나거나 오랜 기간 관리가 없었던 경우에는 확실한 초기화 효과가 있다.

     

    다만 비용이 들고, 매번 진행하기에는 부담이 따른다. 반면 셀프 관리는 일상적인 유지 관리에 가깝다. 필터를 주기적으로 세척하고, 사용 후 송풍 모드로 내부를 말리고, 외부 송출구와 커버를 닦아주는 행동은 조건이 쌓이는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한다. 욕실에서 물기 제거가 대청소를 줄여주듯, 셀프 관리는 곰팡이가 자리 잡을 환경을 만들지 않도록 돕는다.

     

    나는 한때 분해청소만 하면 몇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내부를 말리지 않은 채 방치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결국 핵심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언제 리셋을 하고 언제 유지 관리를 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었다. 에어컨도 결국 하나의 공간이기 때문에 누적된 오염은 주기적으로 정리해주고, 일상에서는 습기와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살림초보였던 나는 비용을 치르며 배웠지만, 이제는 분해청소와 셀프 관리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분해청소가 초기화라면, 셀프 관리는 속도 조절이다. 그리고 두 관리가 함께 갈 때, 에어컨은 비로소 깨끗한 공기를 유지할 수 있다.

     

    에어컨을 통해 다시 확인한 공통 원리

    살림초보의 기록은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 공간은 얼마나 오래 젖어 있었는가?”
    “공기는 흐르고 있었는가?”

     

    욕실에서는 물기 위에서, 벽지에서는 결로 속에서, 주방에서는 잔열과 기름 사이에서, 빨래에서는 젖은 섬유 속에서, 옷장에서는 멈춘 공기 안에서 곰팡이가 자랐다. 그리고 에어컨에서는 차가운 결로와 방치된 내부 시간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곰팡이는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가 안심한 구조 속에서, 우리가 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자란다. 나는 이제 에어컨을 켤 때마다 단순히 시원함만 떠올리지 않는다. 그 안에서 반복되는 결로의 시간과, 꺼진 뒤 남겨지는 습기를 함께 생각한다.

     

    살림초보의 기록은 점점 확장되고 있다. 공간이 바뀌어도 원리는 같다. 관리란 눈에 보이는 결과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조건을 줄이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에어컨 속 곰팡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배우게 됐다.